이번에 다녀온 곳은 연산군 묘(燕山君墓) 입니다.
조선 제10대의 왕 연산군(재위 1494∼1506)
대학 다닐 때 정비석님의 "연산군"이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 연산군의 괴벽을 알 수 있는 장면을 잠시 이야기하고 넘어가겠습니다.
『 연산군 열여섯 살 때 성종 대왕이 연산군을 편전으로 불렀습니다. 그때 멀리 뜰 아래에서 사슴 한 마리가
연산군이 서 있는 계상으로 껑충껑충 뛰어 올라왔습니다. 그 사슴은 성종 대왕이 가장 사랑하는 동물로서, 언제나 궁중에 놓아 기르는 사슴이었습니다
그 사슴이 연산군의 어깨에 뛰어오르며 그의 손을 핥기도 하고 친근감을 표시하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만약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사슴의 목덜미라도 정답게 두드려 주었을 겁니다.
그러나 연산군은 결코 그렇지가 못하였습니다. 화를 벌컥 내면서 성종 대왕이 보는 앞에서 사슴의 배를 발길로
걷어 차버렸습니다. 성종 대왕은 단박 얼굴에 진노의 빗을 띄우면서 엄하게 질책을 하였습니다.
연산군은 고개를 수그린 채 잘못을 뉘우치는 기색은 추후도 없이 분격 지심을 참지 못하며...
(이놈의 사슴이란 놈, 어디 두고 보자! 아버님만 돌아가시는 날이면, 내가 왕위에
오르기만 하는 날이면, 다른 일은 죄다 제쳐 놓고, 맨 먼저 너한테 원수를 갚으리라!)
성종 대왕 승하와 동시에 연산군은 대행왕이 되었다.
즉위날 연산군은 문무백관이 모두 모인 날 성종이 가장 아끼는 사슴을 활로 쏴 죽어버렸습니다.
(하하하, 내가 네놈에게 원수를 갚았으니, 이제야 기분이 통쾌하구나, 하하하.) 』
정비석님의 연산군 책에서
연산군묘는 도심속 주택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주차장이 없습니다.
남바원도 지인 분과 주위 몇 바퀴를 돌았습니다;; 그냥 골목길에 주차하시고 가세요.
도보로 오시면 버스 정류장(간선130 , 지선1144, 지선1161번)에서 60~80m 정도 걸어 오시면 됩니다.
얼마 전에 지인분(Art 낙관 주인공)과 도선사에 다녀오다 지인분께서 찍어준 은행나무..
허락받고 가져왔습니다.^^
Samsung 똑딱이 카메라로 찍은 건데.. 나름 잘 나왔어요.ㅎㅎ
방학동 은행나무
서울시 지정 보호수 제1호라고 하네요.
높이 24m, 둘레 9.6m 수령이 800~1000년 서울시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입니다.
이곳(은행나무)에 불이 날 때마다 나라에 큰 변이 생겼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일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에 불이 났다고 합니다.
연산군 묘 입구입니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안내소 비치된 방명록을 작성하시고 입장하면 됩니다.
보시면 참 초라하죠.. 하지만 광해군묘에는 이런 곳도 없습니다.
이곳이 연산군 묘라고 알려주는 비석(碑石) 사적 제362호
안내소 앞에 연산군묘 상설도
연산군과 그의 부인인 폐비 신씨는 위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밑에서 하겠습니다.
연산군묘로 올라가는 나지막한 언덕길을 올라갑니다.
..참 흙길은 좋아요.
연산군 묘를 향하면서 처음 보게 된 문인석(文人石)
폐위된 왕위 지키는 문인석..왠지 쓸쓸하게 보입니다.
길을 따라 올라서자 자그마한 묘 다섯 개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
연산군 묘의 전경입니다.
장명등 바로 뒤로 보이는 묘는 연산군사위 구문경묘 입니다.
구문경묘 우측에는 연산군의 딸 휘순공주묘 입니다.
좌측▶연산군묘(燕山君墓) , 우측▶거창신씨묘(居昌愼氏墓) 입니다.
광해군 묘(남바원 여행기시즌2)처럼 연산군묘도 무인석 병풍석,석마 등.. 없습니다.
문인석과 망주석, 장명등만 보입니다.
연산군은 1506년 31세의 나이로 왕위에서 쫓겨난 이후 두어 달 만에 유배지인 강화도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조선왕조 실록 기록에는 역질로 연산군이 죽었다고 나옵니다.
하지만 10월 중순에 귀향을 가서 한 달 뒤 급작스럽게 역질로 사망을 했다고 하는데 한겨울에 전염병(역실)이라?? 믿기 힘들죠.
독살설이라는 이야기 나올만하죠.
(위 링크 사진)연산군이 귀양 가서 죽은 강화도 교동도에는 그의 넋을 기리는 사당이 있다.
이곳엔 연산군 부부상이 걸려 있다. 연산군이 민간에서는 신앙의 대상이 됐음을 말해 준다.
연산군묘는 연산군의 부인 신씨의 간청으로 7년 후인 1513년에 방학동에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능(陵) , 원(園) , 묘(墓) 에 대해..
능(陵) , 원(園) , 묘(墓) 왕족들의 무덤은 묻히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구분할 수 있습니다.
능(陵) 은 통상 제왕과 왕후 원(園)은 왕세자와 왕세자비 또는 왕의 사친(私親)의 무덤을 말한다.
그 외 무덤은 일반인과 같이 묘(墓)라 불린다.
왕에서 군으로 격하된 연산군과 광해군의 무덤은 묘로 불린다.
1494년 12월 성종이 승하후 조선 제 10대 왕으로 등극한 연산군 그의 나이는 19세 였다.
조선의 폭군 연산군은 무오사화(戊午士禍)를 겪기 전까지는 폭군의 모습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즉위 초에는 성종왕때의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졌고 6개월 이후에는 전국 모든 도에 암행어사를 파견하여 민간의 동정을 살피고
관료의 기강을 바로 잡았습니다. 또한 인재를 확충하기 위해 별시문과를 실시하여 33인을 급제시키고 귀화한 여진인을 하여금
그들을 회유케 하여 변방 지역의 안정을 꾀하기도 했습니다.
그럼 무오사화(戊午士禍, 1498 연산군 4년)에 대해 이야기 할게요.
조선 시대 4대 사화(士禍) 중 연산군때 두 번이 일어납니다.
그중 첫번째 사화가 무오년 일어난 사화입니다.
우선 사화(士禍)라는 뜻은 한문 뜻대로..
조선 시대에 정치적인 반대파에게 몰리어 조신 및 선비들이 참혹하게 화를 입은 사건을 말합니다.
연산군 때 훈구세력과 사림세력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 - 수양대군(세조)의 왕위 찬탈(纂奪)을 비난한 글
훈구파(유자광 등)들은 사림파를 없애기 위해 이사실을 연산군에게 알렸습니다.
연산군은 사람세력들을 대거 숙청하는 일이 바로 무오사화입니다.
두 번째 갑자사화(甲子士禍, 1504 연산군 10년)
많은 분들이 아시는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尹氏)의 복위 문제에 얽어서 일어난 사화 입니다.
연산군은 모친의 비극을 임사홍을 통해 알았다고 합니다.
연산군은 사림 세력들을 대거 숙청하고 후궁들과 심부름을 갔단 그 신하들까지 모두 숙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갑자사화 내용은 이렇습니다. 현재 와서 다르게 해석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조선 왕을 말하다" 이덕일 역사 평설 ~ 읽어보세요!!
人君所畏者, 史而巳(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 - 연산군
연산군은 많은 시를 남겼다고 합니다. 그중 개인적으로 선택한 시한편을 담아왔습니다.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아서 人生如草露
만날 때가 많지 않은 것 會合不多時
-연산군의 마지막 시-
참! 그거 아세요..
현재 사용하는 칫솔이 연산군 때부터 사용했다는걸.
연산군 12년 2월 28일 연산군은 봉상시(奉常寺)의 종에게 “양치질하는 나무를 만들어 바치라”고 명한다.
‘양치질하는 나무’란 아마도 버드나무 가지를 뜻했을 것이 다. 원래 양치질이라는 말의 어원이 ‘버드나무 가지’, 즉 양지(楊枝)다.
옛날 사람들은 버드나무 가지에 소독 성분이 있다고 믿어 버드나무 가지를 이쑤시개처럼 깎아서 사용했다.
그래서 ‘양지질’이라고 하던 것이 이(齒)와 관련됐다고 해서 어느 시점에 ‘양치질’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덕일 "조선왕을 말하다" 연산군편에 나온 글입니다.
남바원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같아서 담아왔습니다.^^
『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의견은 다르다. 그러나 세상에는 늘 의견을 사실로 만들려는 세력이 존재해 왔다.
의견을 생산해 사실처럼 유통시키려면 권력과 기구가 필요하다. 대중들은 때로 여기에 속아 오인하지만
대부분 곧 진실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의견이 수백 년 간이나 사실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연산군이 그런 경우이다. 』
연산군묘 둘러본 후 내려오는 길에~ 잠자리 한 마리가 배웅을 해주네요.
도망가지도 않고.. ;;
여기서 또 ~!! 잠깐... 또 한번 지인의 사진을 빌려 왔습니다.^^ 제가 연산군 묘 갔을 때는 저는 그냥 지나쳤던 곳인데..
도선사를 다녀오다 잠시 들러 지인분께서 찍은 사진입니다.
연산군묘 바로 길 건너에 양효공 안맹담(安孟聃)과 정의공주(貞懿公主) 묘역 입니다.
정의공주는 누군지 알고 계신 분도 있겠죠. 저는 몰랐거든요.. 그래서 지나쳤나 봐요.^^
바로 세종(世宗)의 둘째 딸입니다. 안맹담(安孟聃)은 정의공주의 남편입니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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