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바원 정동길 따라 역사 여행 - 아관파천 구 러시아공사관
서울 구 러시아공사관 (서울 舊 러시아公使館) - 사적 제253호에 다녀왔습니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乙未事變 .1895년 음력 8월 20일) 이후 일본군의 무자비한 공격에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과 세자는 경복궁을 떠나는데.
1896년 2월 11일 ~ 1897년 2월 20일까지 1년간 러시아 제국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는 사건이 바로 아관파천(俄館播遷)입니다.
1864년 조선 고종 1년 이후 러시아 제국을 한자로 ‘아라사’(俄羅斯)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하였다. 따라서 ‘아관’(俄館)이란 러시아 대사관을 뜻한다.
아관 = 러시아 파천 = 임금이 도성을 떠나 다른 곳으로 피란하던 일
1885년 당시 러시아 공사관 (출처 - google.com)
해방 후에는 소련 영사관으로 사용되었는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탑신과 지하 2층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소실됐다.
남아 있던 탑신을 1973년 현재와 같이 복원하면서 석재와 회색 벽돌로 지어졌던 것을 흰색 회반죽으로 마감했다.
때문에 구 러시아공사관 유적은 러시아공사관 탑이라고도 불린다.
1977년에는 사적 제253호로 지정됐고 1981년에는 조경 공사를 통해 주변 환경을 정비했다. 이후 1987년에는 공사관 탑신 아래 정동공원을 조성했다.
“언덕 꼭대기에는 이탈리아 빌라 건축양식으로 지은 본관 건물이 서 있다.
1층짜리 건물이지만 천장이 높은 큰 방들이 한 줄로 이어져 있고 건물 오른쪽에는 사면체의 탑이 있어 매우 아름답다.
언덕에는 갖가지 나무들로 뒤덮인 화려한 공원이 있다.”
(심 비르체바·레보쉬코 공동논문 ‘조선국왕폐하의 건축가 사바친’에서 인용 "Architect of His Majesty King of Korea,” Sabatin(1860-1921); T. Simbirtseva in col. with S. Levoshko)
구 러시아공사관은 러시아인 건축가 사바틴이 설계했으며 1890년 완공됐다.
우리나라 근대 건축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덕수궁의 중명전과 정관헌을 비롯해 독립문과 탑골공원 등도 그가 설계했다.
러시아공사관도 당시에는 3층의 탑신을 가진 꽤나 큰 건물이었다.
사바틴이 설계한 러시아공사관은 르네상스식 건축으로 ‘ㄱ’ 자형으로 지어졌으며, 건물의 정면과 측면에 아치 형태의 아케이드를 뒀다.
특히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3층의 탑신이 특징이었다. 또 공사관 입구에는 아치문이 세워져 있었다.
3층에는 네 면에 반원 아치형의 창을 냈고, 지붕은 삼각형 페디먼트(pediment, 박공)로 구성했다.
르네상스식 건축 양식
현재 탑의 동북쪽에 있던 지하 밀실(密室)의 일부가 발굴되었는데, 지하 밀실은 비밀통로로 경운궁(지금의 덕수궁)까지 연결되었다고 한다.
러시아공사관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후 1896년(건양 1) 2월 1일부터 고종이 세자(순종)와 함께 약 1년간 머물렀던 곳이다.
이곳에는 당시 국제정세에 휩쓸려 자주 정변을 겪어야 했던 조선의 현실이 드러나 있다.
고양이 한 마리가 요염한 자세로 공사관 터에 앉아한 곳을 바라보면서 쉬고 있습니다.
러시아 공사관을 떠나기 전 안녕!!~할 때 마지막으로 쳐다봐주네요.
1896년 2월 11일 고종은 러시아 공사 웨베르와 미국 대리공사 알렌 등의 협조로 아관파천을 단행했다.
한 나라의 국왕이 자국 내의 외국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것은 문제가 있었지만, 경복궁에서 일본의 신변 위협을 느낀 고종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고종은 청일전쟁을 보며 청나라의 몰락을 확인했고, 일본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은 러시아라 판단했다.
아관파천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가 있습니다.
무능한 왕 고종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타국 공사관에 몸을 의탁한 치욕적인 역사적 사건이라는 글.
한편 다른 이야기는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며 근대 국가 건설 근간을 만들기 위해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며 친 러시아적인 박정양 내각이 조직되었으며, 서재필이 주도하는 독립협회가 결성되었다. 글
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대한제국의 고종 이야기, 헤이그 특사, 을사늑약 등 이야기 많이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여행기에서 하겠습니다.
정동 여행기 & 대한제국 황제 고종 & 흥선대원군 & 증명전 & 덕수궁 (추후 정동 여행기 포함 예정)
1년이 지난 1897년 2월 20일 고종은 다시 환궁한다.
환궁한지 6개월이 지난 1897년 8월 고종은 연호를 "광무(光武)'로 고치고 1독립협회의 진언을 받아들여
그해 10월 12일 황제즉위식을
환구단
에서 갖고 국호를 대한, 연호를 광무(光武)라 고치고 대한제국을 대내외에 선포하였다.
다음 여행지는 그럼 환구단 이겠죠. 가볼까요
고종황제 하늘에 제를 올리고 대한제국大韓帝國 선포한 환구단 가다. (서울 가볼만한곳)
덕수궁 돌담길 따라 고종의 길을 걷다. (서울 가볼만한곳, 정동 시간 여행, 정동길)
글 참고 // 중구 문화관광 - tour.junggu.seoul.kr/ 서울특별시 - seoul.go.kr
- 1897년 8월 17일부터 1907년 8월 11일까지 대한제국 고종 때에 사용한, 대한제국의 첫 번째 연호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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