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관파천 - 러시아공사관에서 1년이 지난 1897년 2월 20일 고종은 다시 환궁 한다.
환궁한지 6개월이 지난 1897년 8월 고종은 연호를 "광무(光武)'로 고치고 독립협회의 진언을 받아들여
그 해 10월 12일 황제즉위식을 환구단에서 갖고 국호를 대한, 연호를 광무(光武)라 고치고 대한제국을 대내외에 선포하였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환구단 (사적 제 157호)"을 찾았습니다.
고종황제가 제를 올리고 대한제국 황제 즉위식을 거행했던 역사적인 곳입니다.
고종이 환구단에서 황제로 즉위하던 상황을 보도한 1897년 10월 12일(음력 9월 17일)자 독립신문(獨立新聞)의 기사 내용
“오전에 환구단에 임하시어 하느님께 제사하시고, 황제위에 나아가심을 고하시고, 정오에 만조백관이 예복을 갖추고 경운궁에 나아가 태황제폐하, 황태후 폐하, 황태자 전하께 크게 하례(賀禮)를 올리니, 백관이 즐거워하더라. 집집마다 태극 국기를 높이 걸어 인민의 애국지심을 표하며, 길에 다니는 사람들도 얼굴에 즐거운 빛이 나타나더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조선호텔 방향으로 횡단보도 지나면 굳게 닫힌 문을 만날수 있다.
앞편3칸, 측면 2칸, 가운데 칸은 넓고 양측 칸은 좁은 문
환구단(圜丘壇) 정문 (42년만에 제자로 돌아온 정문)
원래 황궁우 남쪽인 조선호텔 출입구가 있는 소공로에 있었는데.
1967년 철거된후 행방을 알 수 없었던 정문이 강북구에서 40년 만에 발견 되었다.
우이동의 그린파크 호텔 재개발 하는 과정에서 호텔 정문으로 사용한 "백운문"이 바로 환구단 정문으로 밝혀졌다.
환구단 정문 우측으로 보시면 길이 있습니다. 길 따라 가시면 됩니다.
조선호텔 자리가 환구단 터입니다.
그곳은 원래 조선 태종의 둘째 딸인 경정공주의 집이 있던 곳입니다. 소공주 살았던 동네라 하여 지금도 그곳의 지명이 소공동입니다.
1911년 당시 환구단 전경, .한국풍속풍경사진첩 - 문화재청
석고단
석고단(石鼓壇)’은 1902년 고종 황제 즉위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조형물이다.
석고(石鼓)란 돌로 만든 북을 말한다. 환구단 제사 때 사용하던 악기의 하나를 형상화하여 3개의 돌북을 만들었다
조선 말기 조각의 걸작으로 꼽힌다.
황궁우로 연결되는 석조 삼문
천제(天帝) 1를 지내던 환구단에서 위패를 모신 황궁우로 연결하는 답도에는 석조 삼문이 있다.
계단에는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쌍룡과 법·정의를 뜻하는 해치가 설치되어 있다.
이들 동물에는 황제의 권위와 법치주의를 향한 고종의 바람이 담겨 있다. 특별히 삼문의 지붕을 낮게 만들어 황궁우로 향하는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겸손된 마음을 갖게 설계된 점이 인상적이다. 또한 삼문의 천정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용문(龍紋)이 장식되어 있다.
쌍룡 / 해치
삼문에서 바로본 황궁우
황궁우(皇穹宇)’
팔각형에 3층 건물로 1899년 환구다의 부속 거물로 축조한 황궁우
외부에서 보면 8각의 3층 구조이지마 안으로 들어가면 하나의 통층 건물이다.
이곳에는 천신(天神), 지신(地神)과 함께 태조 이성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고종은 태조 이성계를 추존해 태조고황제로 삼고 대한제국의 번성을 염원하며 이곳에 위패를 봉안했다.
환구단 내부(사진 클릭 하시면 크게 나옵니다.)
환구단 실내가 궁금했는데 문화재청 문화유산 포털 자료에 있어서 실내사진 보여드립니다.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자료 환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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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우의 해태상
팔면에 설치된 문과 창은 소슬꽃살로 장식하고, 바깥기둥 사이로 물결과 연꽃 무늬(파련각波蓮刻)를 새긴 낙양을 설치하여 건물에 화려함을 더하였다.
삼문 밖으로 조선호텔 커피숍 유리창가이 보입니다.
환구단 사진을 찍고 있는데 커피숍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집니다.
지금은 사라진 3층 원형제단의 환구단 모형. 서울역사박물관에 가면 실물형태의 조형물을 볼 수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여행기 추후 올리겠습니다.)
환구단에는 석조울타리, 주춧돌 등이 흔적이 남아있다. 하지만 환구단의 완전체를 볼 수 없다.
고종은 환구단에서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대한제국의 탄생을 국내외에 선포하면서 근대국가로 부할을 시도했다.
하지만 급변하는 국제정세 강대국속에 대한제국이 서있을 자리는 너무나도 비좁았다.
대한제국은 고종황제와 순종황제를 마지막으로 1910년 8월29일 한일병합에 의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럼 다음 여행기는 한일병합 을사늑약의 현장 중명전으로 가볼까요.
중명전내 을사늑약의 현장의 현장을 재현한 모습
고종의 선택 아관파천 구 러시아공사관에 가다. 덕수궁 돌담길 따라 고종의 길을 걷다.
- 하늘의 황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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