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야외편에 이어 실내편 1부 (상설전시관)입니다.
그럼 들어가 볼까요~
관람시간 및 관람표
국립중앙박물관 연중 휴관일은 1월 1일과 매주 월요일입니다.
관람시간
화.목.금 : 09:00~18:00 / 수.토요일 : 09:00~21:00 / 일요일/공휴일 : 09:00~19:00
사진에 나온것 처럼 상설전시관은 무료입니다.
상설전시관 출입구에 들어서면 전시장 1.2.3층을 어우르는 높은 천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열기구 처럼 보이는 천장
으뜸홀입니다.
발물관의 전시실로 통하는 관물으로 전시공간을 향해 서서 보면 효율적인 동선으로 배치된 각층의 전시실이 좌우의 양 날개로 펄쳐져 있습니다.
사진 우측을 보시면 안내데스크가 있습니다.
관람문의 및 영상/음성안내기(PMP/MP3) 대여해 줍니다.
영상/음성안내기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관람안내 글을 확인하세요.
남바원과 지인이 대여한 음성안내기(MP3)입니다.
대여료 1.000원입니다.
영상.음성 안내기를 대여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이용하시는 방법도 있습니다.
스마트폰 이용 방벙
마켓에서 "국립중앙박물관" 검색 설치
각 전시실에 붙어있는 모바일 전시안내 번호를 입력하면 전시실 및 전시유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볼수 있습니다.
주위사항 - 이어폰을 사용 하세요. 주위분들에게 방해가 될수 있겠죠~ 매너죠.
혹시 이어폰 잊고 오셨으면 안내데스크에서 무료로 대여해 줍니다.
여러 테마 주제로 전시를 하네요.
관련된 전시 기간은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에서 확인 하시고 가세요.
역사의길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가교
역사의 글은 관람객들의 동선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주는 공간이며,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삶을 역사와 이어주는 가교(架橋)와 같다.
관람객들은 '역사의길'을 통해 동서남북의 방향에 구애되지 않고 1.2.3층의 제한 없이 각 전시실을 손쉽게 오가면 관람을 즐길 수 있다.
남바원이 가장 먼저 향한곳은 1F(1층) 선사.고대관입니다.
관람 순서.동선은 표지판을 두고 있지만 워낙 넓고 감상할 곳이 많은곳이라 미리 동선및 관람할 곳을 파악 후 가시면 편합니다.
쉬엄쉬엄 감상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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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관람시 유의사항입니다.
한번 쭉~ 읽어 보세요.
붉은 선을 강조한 플래시/삼각대 등을 이용한 찰영은 금지입니다.
선사.고대관
구석기.신석기.청동기.고조선.고구려.백제.가야.신라실이 있습니다.
주먹도끼
구석기시대 전기의 대표적인 석리로 여러 용로로 사용
경기도 연천 전곡리유적에서 출토
신석기 시대의 도구 제작 기술의 발전
신서기시대에는 숫돌과 재료의 일부 또는 전체를 갈아서 만드는 마제기술이 본격화되었다.
돌과 뼈를 쪼갤 때 자연적으로 생기는 날을 이용하였던 구석기인들과는 달리, 신서기인들은 돌과 뼈를 원하는 형태에 맞춰 잘라내고,갈고,구멍을 뚫어서 날카롭고 정형화던 도구를 만들었다.
빗살무늬토기
신석기(新石器) - 암사동
신석기를 대표하는 유물 과거 교과서 많이 봤던 토기
암사동 집터유적에서 출토된 것
토기 아래쪽에 뚫린 구멍은 깨진 토기를 임시로 수리하여 사용했던 흔적으로 추정되며,
이를 통해 당시의 토기를 누구나 만들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만드는 기술자가 따로 있었을 거라는 추측을 할수 있다.
중부지방의 빗살무늬토기 - 바리
신석시 시대 - 서울 암사동
청동기 만들기
금속을 다루는 기술의 발견은 인류 역사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고조선은 청동기에 이어 철기 문화를 꽃피우며 중국 랴오닝 지역과 한반도 서북 지역을 주요 무대로 중국 연燕, 진秦, 한漢과 대등하게 겨우었다.
특히. 고조선은 중계 무역 문제로 일어난 한과의 1차 전쟁에서 승리하고 1년여에 걸쳐 맞설 정도로 강성한 국가였으나
오랜 전쟁으로 내부에서 분열이 일아나 기원전 108년 멸망.
방울 청동
요령식 동검
고조선 청동기 시대
허리띠고리 청동
삼한(마한) 2-3세기
충남 천안 청담동 무덤
귀걸이 금
삼국시대(고구려) 5-6세기
굵고 둥근 고리에 작은 장식을 매단 것으로 고구려의 대표적인 귀걸이다.
연결고리[遊環]와 드리개[垂下飾]에 금 알갱이를 붙여 넝쿨무늬와 꽃무늬를 표현
서울 능동에서 출토
짐승얼굴무늬 수막새
삼국시대(고구려) 5~6세기
크게 과장된 두 눈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짐승얼굴이다.
짐승얼굴무늬는 나쁜 것을 쫓기[?邪]위한 것으로, 주술적인 장식이나 건축, 무덤 등에서 많이 나타난다.
말 탄 사람이 그려진 벽화 편
삼국시대(고구려) 5세기
평남 남포 쌍영총
1931년 평안남도 남포시의 쌍영총을 조사할 때에 수습된 벽화 조각으로 널길벽 인물 행렬도의 모습에서 당시 고구려인의 옷치장과 말갖춤 등을 엿볼 수 있다.
맞새김무늬 꾸미개 금동
삼국시대(고구려) 5~6세기
평양 진파리 무덤
테마전시 - 강서대묘 사진도
청룡(靑龍)
6세기 말
강서대묘 널방의 동벽에 그려진 청룡은 사신중 동쪽의 수호자
청룡은 널방 입구인 남쪽을 향해 왼쪽 앞발을 크게 내닫으며 하강하는 모습입니다.
커다란 S자를 이룬 가느다란 목과 굵은 몸통, 계단꼴을 으루면서도 유연하게 뻗어 나가 꼬리
적절하게 내딛고 뒤로 뻗은 네 다리가 서로 어우러져 청룡의 자태
테마전시 - 강서대묘 사진도
현무(玄武)
강서대묘 널방의 북벽에 그려진 현무
거북이와 뱀이 마주보면서 서쪽으로 향해 나아가는 모습
거북이 자아낸 운동감과 뱀이 이루어낸 탄력성이 잘 어울려져 역동적인 현무를 만들고 있습니다.
테마전시 - 강서대묘 사진도
주작(朱雀)
강서대묘 널방의 남벽에 그려진 주작
암수 주작은 널방 입구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모습입니다.
널방 입구 주변은 넝쿨무늬로 장식을 하였고, 부릅뜬 눈, S자꼴을 이룬 목과 몸통, 원형에 가깝게 활짝 편 날개와 반원꼴로 크고
힘있게 말려 올라간 세 갈래 꼬리깃 등이 주작을 거세고 힘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고 있다.
고대 중국에서 깃털 달린 동물 중 으뜸이라 칭했던 봉황과 관련된 것으로 보입니다.
테마전시 - 강서대묘 사진도
백호(白虎)
강서대묘 널방의 서벽에 그려진 백호
서쪽을 관장하는 백호는 청룡과 짝을 이루어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의 수호신
하늘 사방의 28별자리와 관련있는 벽사와 음양조화를 뜻하는 신령스러운 동물
동의 청룡(靑龍), 서의 백호(白虎), 남의 주작(朱雀), 북의 현무(玄武)
호우(壺?) 글자가 있는 청동 그릇
삼국시대(고구려) 415년
경북 경주 호우총
신라 지배층의 무덤에서 출토된 고구려 청동 그릇
바닥에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乙卯年國?上廣開土地好太王壺?十)'이라는 글자가 광개토왕릉비와 같은 글자체로 새겨져 있다.
이 그릇은 광개토왕을 장사지낸 1년 뒤에 신라 사신(使臣)이 고구려에서 받아왔던 것으로 추정
된다. '호우(壺?)'라는 글자를 통해 이러한 형태의 그릇이 당시 고구려에서 '호우'라고 불리었음을 알 수 있다. 경상북도 경주 호우총에서 출토되었다.
연꽃무늬 수막새
삼국시대(고구려) 5~6게기
서울 아차산 홍련봉 1보루
천추총 정상부에 세워졌던 건물에 사용되었던 기와로 생각된다.
막새면 가운데는 볼록하게 솟은 반구형 씨방[子房]이 배치되고, 막새면을 부채살 모양으로 구획한 후
끝이 뾰족한 연꽃잎을 도드라지게 새기는 등 고구려 기와의 특징이 뚜렷하다
관 꾸미개 (국보 155호)
삼국시대 백제(百濟)
충청남도 공주시 무령왕릉 출토
무령왕비 관의 좌우에 꽂은 꾸미개로 얇은 금판을 뚤어 무늬를 새긴 것이다.
중앙의 꽃병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연꽃잎들이 그 위로는 넝쿨이 펼쳐진 모습이다.
『구당서(舊唐書)』의 '(왕은) 검은 천으로 된 관에 금꽃을 장식하고…'라는 기록은 이 관 꽂이가 실제로 사용되었음을 말해준다
백제금동대향로 (국보 287호)
삼국시대 (백제) - 높이 61.8cm
지인과 대화 하면서 유물을 보고 있는데 한곳에서 웅성웅성 ~
관람객들이 많이 모여있네요. 가보자~
많은 관람객분들이 감탄을 하십니다. 주위에 학생들도 대단하다고 ~~ 웅성웅성~
다들 한컷씩 담아 가네요.
1993년 발굴되어 세인을 놀라게 했던 백제금동대향로
충청남도 부여 능산리 고분군 찾는 관람객을 위해 주차장 공사를 하던중 발견을 했다고 합니다.;;
다리 하나를 치켜들고 있는 한마리의 용이 갓 피어나려는 연꽃봉오리를 입으로 받치고 있는 형태
신선들이 사는 박산(博山)이 있다.
박산(博山)이 어디일까?? ~ 몰라 궁금했는데 친절하게 알려주네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산.바다. 가운데에 있으며 신선이 살고 있는곳이라고 합니다.
박산(博山)의 꼭대기에는 봉황 한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펴고 서 있는 모습
개인적으로 소장중인 역사스페셜 "백제대향로는 어느 불효자의 사부곡" 편을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느 불효자는 바로 백제의 27대왕 위덕왕 威德王 554 - 598 입니다.
위덕왕은 성왕의 아들로 자기를 구원하기 위한 출정에서 목숨을 잃은 아버지 성왕을 그리며 만든게 바로 백제대향로 입니다.
....
백제대향로 이야기 하면 많이 길어질듯 해서 이 이야기는 추후에 따로 남바원 역사 이야기를 통해서 할까 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산 경치 봉황무늬 벽돌 (보물 343-3호)
백제(7세기)
백제 사비시대 미술을 대표하는 것으로 모두 8종류의 문양전이 출토되었는데. 그 크기는 대체로 한변 29cm, 두께 4cm 내외이다.
산과 나무, 그리고 물과 바위가 구름과 함께 잘 묘사되 있는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전체적으로 좌우 대칭의 안정된 구도를 보이고 있고, 산과 구름의 표현이 곡선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그 기법에 원근법이 나타나고 있어서 백제 회화의 한 단면을 잘 살펴볼 수 있는 백제미술의 걸작이다.
연꽃 구름무늬 벽돌
봉황무늬 벽돌
연꽃무늬 벽돌
연꽃 짐승얼굴무늬 벽돌
백제의 기와는 웅진기와 사비기를 거치면서 연꽃무늬를 주로 하는 백제 툭유의 양식이 확립된다.
백제의 기와 기와 제작기술은 실라와 왜에도 전해졌는데, 왜에 파견된 와박사는 아스카 기와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경북 고려 지산리 무덤, 부산 반여동 무덤, 경남 합천 옥전 무덤 출토
가야는 변한(弁韓)의 옛 땅인 낙동강 중하류에서 풍부한 철 자원을 기반으로 성장
가야의 말갖춤은 말을 다루는데 필요한 재갈.굴레.고삐와 말 탄 사람의 안정을 위한 발거리.안장.가슴걸이 그리고 장식용의 꾸미개. 말방울.기꽂이 등을 말한다.
5세기 이후 부터 신라.백제의 여향을 받아 화려한 무늬와 금.은 등으로 호화롭게 장신한 말갖춤을 많이 사용하였다.
가야의 투구
투구 철
삼국시대(가야 5~6세기)
경상북도 고령 지산리 1-3호 무덤에서 출토
철판 50여 개를 2단으로 배치하고 못을 박아 만든 투구이다. 둥근 형태의 챙에는 삼각형 구멍이 뚫려 있다.
갑옷과 투구
전투를 할 때 머리와 몸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투구, 어깨가리개[肩胛], 그리고 판갑옷[板甲]으로 구성
말 머리 가리개
삼국시대(가야 5세기)
부산 북천동 10호 무덤에서 출토
전쟁터에서 말 얼굴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2조각의 넓은 철판으로 구성된 얼굴 덮개부, 정수리와 귀를 가리는 챙,
그리고 좌우 볼을 가리는 볼 가리개의 세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쇠못과 가죽 끈으로 연결하였다
금관(국보 191호). 금제 허리띠(국보 국보 192호)
금관 - 삼국시대 (신라 5세기)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황남대총 북분 출토
신라 왕족의 힘과 권위를 상징하는 금관 나뭇가지모양 세움장식[樹枝形]과 사슴뿔모양[鹿角形]의 세움장식이 있는 전형적인 형태
여자의 무덤으로 알려진 경주 황남대총 북쪽무덤에서 출토되었다.
금제 허리띠 - 삼국시대 (신라 5세기)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황남대총 북분 출토
금으로 만든 허리띠 꾸미개로, 허리띠에 물건을 주렁주렁 매달고 생활하는 북방유목민의 풍습에서 유래한 것이다.
가죽은 없어지고 꾸미개만 남아 있다. 드리개에는 옥, 물고기모양, 손칼모양, 수실모양, 홀[圭]모양 판 등이 매달려 있는데 일상생활에 필요한 연모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국보 3호)
신라 진흥왕이 국토확장과 국위선양을 목적으로 세운 기념비
우리 대한민국의 국보 3호 입니다. 모르시는분들이 많아요..이외로~
서울 북한산 비봉 있던 순수비를 박물관으로 옮겨 왔다고 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게 진품입니다.
전시실 내 공간이 좁은듯 해서 그런가??
국보3호 보호하는 투명 유리막이 낮고 관람객과 유물과의 거리가 가깝네요.
유리막이 전체를 갑싸고 있는게 아니라 사람 허리 높이 정도. 주위를 돌고 있는 경비원이 보이지만..
개념없는 관람객이 마음만 먹으면 손으로 만질수 있는 정도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저만 이런 생각을 한게 아니네요. 역시 개념없는 관람객이 있네요. ;;;
http://museum.go.kr/program/minwon/minwonManagement.jsp?menuID=001006007&mode=detail&minwonID=12147
경주 황룡사터 발굴된 기와
치미
발해실 넘어가니 거대한 "치미"가 눈에 들어오네요.
발해치미는 양쪽 나래에 여러 개의 줄무늬와 꽃 장식을 하여 전반을 힘있고 세련되게 형성하였다
치미는 지붕의 끝을 장식하는 장식기와의 일종이다.
선사.고대관 이어 중세.근세관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중세.근세관은 고려.조선외 특별전시실
사방의 수호신을 새긴 석관 (고려)
죽은 이의 유골을 담은 석관이다.
4개의 측면 판석에는 바깥 면에 사신(청룡, 백호, 주작, 현무)을 양각하였고, 안쪽 면에는 꽃과 꽃병을 선각하였다.
사신이 둘러 지키고 꽃이 흐드러진 석관 내부에서 죽은 이는 안식을 누렸을 것이다.
공민왕이 쓴 안동 영호루 현판 글씨 (고려 말, 보물 제1097호)
안동 영호루 현판의 글씨를 탁본하여 첩으로 만든 것이다.
이 글씨는 공민왕 10년(1361) 홍건적의 침입을 피해 안동으로 피난 갔던 공민왕이 쓴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 충신 정몽주의 초상화
조선 고종 17년(1880), 이한철 그림
조선 고종 17년(1880) 궁중 화가이던 희원 이한철이 개성 숭양서원에 있던 초상화를 옮겨 그린 것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이다.
조선시대에는 국초부터 경기전 등 전국 여섯 곳에 진전眞殿을 설치하여 태조의 초상화를 봉안하였다.
송시열 초상화
대동법 시행 기념비 탑본
대동법大同法 시행을 기념하여 효종 10년(1659)에 세운 비이다.
대동법은 각 지방의 특산물로 내던 공납제도貢納制度의 폐단을 제거하고자 전田 1결結마다 쌀 12두斗를 납부하게 한 법
어사 박문수(1691-1756) 초상. 조선 후기. 보물 1189호. 박용기 소장.
영조때 문신으로 1723년 병과에 급제한 뒤 암행어사로 활약한 인물.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
영조임금이 신부 정순왕후를 맞이하여 궁궐로 돌아오는 행차 그림,
영조의 어진 (보물 932호)
51세 때의 모습인데 머리엔 임금이 쓰는 익선관을 쓰고 양어깨와 가슴에 용을 수놓은 붉은 색 곤룡포를 입고 있다.
영조20년 1744년 장경주,김두량이 그린 그림
데니 태극기
1886년부터 1890년까지 고종의 외교 고문을 지낸 미국인 데니(Owen N. Denny)가 1890년 5월 미국으로 돌아갈 때 가져갔던 태극기다.
일명 '데니 태극기'라고도 한다. 이후 데니의 가족이 대를 이어 간직하고 있다가, 이를 기증받은 윌리엄 롤스턴(Willam. C. Ralston)이 1981년 우리나라에 기증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태극기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태극기로 알려져 있다.
독립신문
건양 1년(1896) 4월 서재필이 창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신문
서재필(1864~1951)은 <독립신문> 창간사에서 ‘전국 국민을 위한 대변자가 되고 정부가 하는 일을 백성에게 전하고 고발할 것’을 천명하였다
<독립신문>의 발간은 민중을 위한 민간 발행의 신문이라는 점에서 획기적인 일이었으나, 대한제국 정부와의 마찰로 1899년 12월 4일자로 폐간되었다.
조선시대에 강물의 높이를 재기 위해 설치되었던 '수표'
월광사 원랑선사탑비 [月光寺圓朗禪師塔碑] (보물 제360호)
역사의 길 중간 쯤에 위치한 월광사 원랑선사탑비
이 탑비는 신라 말의 고승 원랑선사(816-883년)의 일새을 기록하고 있다.
원량선사가 입적하자 헌강왕은 대보선광이라는 탑 이름을 내리고 김영에게 비문을 짓게 하였는데 글씨는 당나라 구양순의 해서체이다.
거북받침위에 비몸을 올려놓고 그 위에 교룡을 새긴 머릿돌을 얹는 구성
역사의 길 공간에서 한 유물을 보려고 많은 관람객이 있습니다.
저기 멀리보인다. 역사의 길 복도끝에 우뚝 솟은 탑.
오~
경천사십층석탑 (국보 86호)
고려(高麗) <1348년> 높이 13.5m
사실 몇번을 봤던거지만 다시 봐도 남바원의 시선을사로 잡네요.
많은 관람객들 그리고 특히 외국관광객분들이 작은 목소리로 "wonderful ~beautiful" 하네요.
괜히 어깨가 으슥해지고 우리 문화유산이 더욱 자랑스럽습니다.
경천사는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부소산에 있던 절로, 고려시대 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에 세워져 있었던 이 탑은 일제 시대에 일본으로 무단으로 반출되었던 것을 되돌려 받아 1960년에 경복궁으로 옮겨 세워 놓았다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 놓았다.
3단으로 된 기단(基壇)은 위에서 보면 아(亞)자 모양이고, 그 위로 올려진 10층의 높은 탑신(基壇) 역시 3층까지는 기단과 같은 아(亞)자 모양이었다가,
4층에 이르러 정사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기단과 탑신에는 화려한 조각이 가득 차 있는데, 부처, 보살, 풀꽃무늬 등이 뛰어난 조각수법으로 새겨져 있다.
4층부터는 각 몸돌마다 난간을 돌리고, 지붕돌은 옆에서 보아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형태의 기와골을 표현해 놓는 등 목조건축을 연상케 하는 풍부한 조각들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탑의 1층 몸돌에 고려 충목왕 4년(1348)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어 만들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새로운 양식의 석탑이 많이 출현했던 고려시대에서도 특수한 형태를 자랑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적 재료가 화강암인데 비해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도 특이하다.
전체적인 균형과 세부적인 조각수법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태로 눈길을 끌며, 지붕돌의 처마가 목조건축의 구조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어 당시의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이러한 양식은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국보 제2호)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실내편 1부는 이렇게 마무리 하겠습니다.
이어서 국립중앙박물관 마지막편 - 국립중앙박물관 실내편 2부 이어가겠습니다.
참고 사이트
http://blog.naver.com/100museum
http://museum.go.kr
nambaone.com 남바원 남바원닷컴 nambaone nambaONE 남바원여행기 nambaonelee
'여행기 > 시즌2 (2008~ 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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