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일부터 유료개방으로 바뀌었습니다.
남양주 사릉 (南楊州 思陵)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방문계획이 없었는데 옆에 지인이 가보고 싶다해서 무작정 향한곳 사릉;;
사릉(思陵)은 세계문화유산 사적 제209호
조선 제6대 단종비 정순왕후(1440~1521) 를 모신 릉입니다.
정순왕후 송씨(定順王后 宋氏, /1440년 ~ 1521년 음력 6월 4일)는 조선 단종(端宗)의 정비입니다.
시호는 의덕단량제경정순왕후(懿德端良齊敬定順王后)이다
사릉(思陵) 억울하게 살해된 단종을 사모(思慕)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주차장이 안보이네요.
무작정 입구까지 들어가 주차하려고 하니 공익으로 보이는분이 어떻게 오셨나고 묻네요.
나 = 관람 왔는데.
공익 = 관람신청/예약 하셨나요?
나 = 아뇨
공익 = 그럼 관람이 안됩니다.
나,지인 = 이런~ 헉~
나 : 저 죄송하지만 멀리서 왔는데 ... 안될까요?
공익 : 그럼 이곳에서 차 빼시고 도로쪽에 빈 공간에 차 주차하세요. 다시 오세요.
나.지인 : 올~ 감사합니다.
사릉방향 도로쪽에 보시면 두세대 주차할수 있는 있습니다.
주차후 도보로 이동하니 관람 안내 표시판이 보이네요.
2014년 1월 1일부터 유료개방으로 바뀌었습니다.
접수처에서 간단한 인적사항을 작성하고 입장을 하였습니다.
사릉 접수처 입구를 지나면 전통수목양묘장 있습니다.
소나무등 여려 종류의 나무들과 꽃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둘러보려고 했는데 많은 분들이 작업 하시네요.
다음을 기약하고 사릉 경내로 향했습니다.
양묘장을 지나면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 기다고 있습니다.
자~ 숨 크게 한번 쉬고 ~ 경건한 마음으로 걸어봅니다.
비공개 지역이라서 그런지 아주 관리가 잘 되어있습니다.
오랜만에 걷는 흙길~ 좋네요.
하늘로 곧게 뻗은 소나무
천천히 소나무 숲길을 걷다 보니 홍살문이 눈에 먼저 들어오네요.
홍살문 뒤로 정순왕후릉(사릉)과 정자각. 비각이 보입니다.
능침의 규모는 작네요.
안내판
꼭!! ~ 읽어 보세요.
정순왕후 송씨는 1454년 음력 1월 22일 열 다섯의 나이로 한살 연하였던 단종과 혼인하여 왕비에 책봉 되었습니다.
1457년 성삼문, 박팽년등 사육신(남바원여행기 사육신편 작성중)이 추진하던 단종 복위 운동 이 발각되자 상왕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되었고,정순왕후는 군부인이 되어 궁에서 쫒겨 납니다.
左 신도는 신이 다니는길
右 어도는 임금이 다니는 길입니다.
어도 우측에 보이는 배위
임금이 능역으로 입성할때 4번절하고 들가는 곳입니다.
궁에서 쫒겨난 정순왕후
친정마저 풍비박산 난 상태였던 정순왕후는는 동대문 밖 숭인동 청룡사 근처에 초암을 짓고 시녀들과 함께 살았다.
어렵게 살아가는 정순왕후의 이야기를 듣고 세조가 집과 식량 등을 내렸으나 끝내 받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그녀를 가엾게 여긴 동네 아녀자들이 조정의 눈을 피해 그녀의 집으로 먹을 것을 건네주고자 시장을 조직하는 일도 있었다.
사릉 비각에는 사릉 비문이 있습니다.
조선국 정순왕후사릉
신도에서 연결되어 오르는 왼쪽 계단을 신계(神階)라고 하며, 어도에서 연결되어 왕이 오르는오른쪽 계단은 동계(東階)라고 합니다.
정자각 안에는 제수진설도와 기신제의 순서, 그리고 제사를 지낼대 필요한 상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중앙에 제상이 있고 그 앞에 향상 입니다.
정자각은 맞배지붕으로 되어으며 배위가 짧기 때문에 전체 건물의 모습이 정(丁)자형 보다는 정사각형의 느낌을 준다.
1457년 16살 단종 17살 부인 정순왕후가 마지막 이별을 한 곳이 있습니다.
단종과 정순왕후가 헤어진 다리 "영영 건너가 버린다. 영영 돌아 올 수 없는 다리" 라는 뜻의
"영도교(永渡橋)" 입니다.
추후에 청계천 여행기 작성할때 사진 첨부 하겠습니다.
영도교에 관한 기사가 있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연합뉴스 - 청계천 영도교 단종 부부 생이별 상징으로 부할
정자각에서 바라본 사릉
능침의 규모는 매우 작고, 병풍석 난간석을 설치하지 않았으며, 문석인과 석마만이 자리 잡고 있다. 양석과 호석도 한 쌍 씩으로 간소화 되어있다.
영월에서 끝내 생을 마감한 단종의 죽음을 전해 들은 정순왕후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영월을 향해 통곡을 하였다고 합니다.
남바원이 정순왕후 여행기를 작성하면서 정순왕후의 관련 자료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많이 안타깝고 마음이 많이 아프네요.
정순왕후의 여러 글을 읽다 물의를 빚은 사건이 눈에 들어오네요.;;
...
세조의 킹메이커 신숙주가 그녀(정순왕후)를 자신의 종으로 달라고 했다가 물의를 빚기도 했다.
숙주나물의 유래의 주인공이면서 배신의 아이콘 신숙주 답네요.;;
1521년 음력 6월 4일, 82세의 나이로 한많은 생을 마감합니다.
노산군 단종과 정순왕후는 1698년 숙종24년 음력 11월 6일 복위됩니다.
시호를 받고 종묘 영령전에 신위가 모셔져있습니다.
사릉을 나오는 길에 엄나무가 눈에 들어옵니다.
뽀족한 가시나무(엄나무)를 보고 있으니 꼭 단종을 그리는 왕비의 마음 그려지네요.
정순왕후가 얼마나 단종을 그리워 했는지 ...
그녀의 묘소 뒤편에 심은 나무들이 단종의 능인 장릉쪽을 향해 고개숙여 자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고 합니다.
청룡포.사릉 여행기를 작성하면서 이 여행기를 꼭~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배를 떠나면서 두번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고 생각지 못했던 비운의 왕 단종
사육신,살곶이다리,화양정,여주 이포나루,엄흥도 이야기 그리고 단종을 산신령으로 모시는 풍습등..
바로 단종의 유배길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그럼 ~ 이번 사릉 여행기의 마지막은 정순왕후 송씨의 애달픈 시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정순왕후 송씨의 시
나는 우는 듯 웃으며 죽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이라곤 당신이 계신 그곳으로 갈 일밖에 없네요
깊고 어두운 숲을 지나고 안개 자욱한 강을 건너는 머나먼 길이라지만
흔연한 마음에 한걸음에라도 달려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다만 심사에 깃드는 걱정은 헤어진 지 꼬박 예순다섯 해
이젠 여든 두 살의 백발노인이 되어버린 나를
행여 당신이 알지 못할까 하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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