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사 탱화를 제자리로..
흥국사 탱화는 제자리로 가야 한다.
남바원도 지지합니다.
흥국사 탱화에 자세한 글을 더보기에서 확인가능합니다.
흥국사 탱화에 관한 기사 입니다.
꼭!! 읽어 보세요.
http://m.media.daum.net/m/media/culture/newsview/20150718120009514
http://caro.or.kr/board04/2157
남양주 수락산에 있는 흥국사에 다녀왔습니다.
목향원에서 식사 후
도보로 이동 가능한 흥국사로 향했습니다.
덕흥대원군 능인 덕릉이 위치한 덕흥대원군의 원찰입니다.
아..
경기도 남양주에서 서울 노원구 상계동이나 노원 등으로 넘어갈때는 덕릉고개를 넘어다녔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아주 자주 이용하는 길입니다.
덕릉고개
지나다니면서 이름만 알고 있었지
왜 덕릉고개인지 흥국사의 여행기를 작성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맛으로 여행기를 작성하는것도 있습니다.
몰랐던 정보를 여행기를 통해서 얻으면 잘 잊혀지지 않거든요.
..
조선 중종의 일곱 번째 아들인 덕흥대원군은 생전에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그의 셋째 아들이 보위에 오릅니다.
바로 선조 임금입니다.
하지만 덕흥대원군은 자신이 임금이 되지 못하였기에 죽어서는 그의 무덤은 "능"이 아니라 "묘"라 불리게 됐다.
효성스러운 선조 임금이 덕흥대원군이 돌아가신 뒤 묘소라도 릉호를 받도록 하기 위해 신하들에게 하문을 했다.
하지만 신하들은 법도에 어긋난다면 상소를 올렸다.
선조임금은 한 가지 꾀를 냈다.
동대문 밖에서 숯을 사서 파는 장사꾼들을 불러 들였다.
왕은 이들에게 나무수레나 숯수레 또는 지게꾼들이 가게에 오면 어디를 지나서 이곳으로 왔느냐? 하고 물으라고 했다.
덕흥대원군묘를 지나 왔다고 하면 그냥 보내고, 덕릉을 지내 왔다고 하면 안으로 불러들여 술과 밥을 넉넉히 대접하라고 했다.
그리고 그 나무꾼의 나무나 숯을 높은 값으로 계사하여 사주라고 명했다 한다.
이런 소문이 난 후로 덕흥대원군 묘소는 덕릉이 되어 오늘날까지 불려 내려오게 되었다.
흥국사 입구 서면 사찰의 건물보다 높은 나무 두그루 눈에 들어옵니다.
향나무라고 하네요.
크기가 상당합니다.
흥국사는 남양주시 별내면 덕송리 331번지 수락산 큰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는 사찰입니다.
절의 창건은 599년(진평왕 21) 원관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처음에는 절 이름을 수락사(水落寺)라고 했다.
그 이후 1568년(선조 1)에 이르러 왕이 그의 아버지인 덕흥대군의 원당(願堂)을 이곳에 지으면서 흥덕사(興德寺) 라는 편액을 하사했으며,
1626년(인조 4) 다시 절 이름을 지금의 흥국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1790년(정조 14)에는 봉은사, 용주사, 백련사 등과 함께 오규정소(五糾正所) 가운데 한 사찰로 선정되었다. 1
그럼 천천히 둘러 볼까요.
대웅보전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56호)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건물, 지붕은 팔각지붕을 하고 있다.
1818년(순조 18) 큰 화재로 입어 소실되었다가 3년 뒤인 1821년에 중건 되었다.
사진속 좌측 건물은 영산전 인데 재보수를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만월보전
시왕전 뒤쪽에 석축을 쌓아 한 단 폰인 대지 위에 지어진 건물로, 6각형의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 6각형의 각 변 길이가 2.3m에 지나지 않는 작은 건물이지만 사찰 건물로서는 유례가 드문 6각형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사례로 여겨지고 있다.
만월보전이 왜 두장이냐고 생각하셨죠.
사실 처음에 갔을때는 만월보전 문이 자물쇠로 잠겨있어서 약사여래상을 자세히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다녀온 흥국사 여행기를 잠시 중단하고 흥국사의 약사여래 부처를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최근에 다시 다녀왔습니다.
참!! 흥국사 여행기를 작성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영화 속 한장면에도 나오네요.
영화 - 김종욱 찾기 (2010) // 흥국사 경내
출처 - 네이버영화
http://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74893&imageNid=6218632#tab
약사여래 부처
약서여래 부처에 얽힌 일화가 이야기 해드릴께요.
<약사여래 부처에 얽힌 일화>
지금으로부터 약70-80년전의 일이라 한다.
서울 정릉골에는 봉국사가 있는데 이절의 원래 이름이 약사절로 지금도 약사여래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이 절에서 약사부처님께 불공을 드리고 기도를 하기만 하면 온갖 병이 다 났고 소원이 성취 되므로 많은 신도의 발길이 끊일 날이 없었다.
법당의 기도를 맡은 스님들은 1년내내 잠시도 쉴 겨를이 없었다.
그러던중 어느해 정월달 법당 시중에 지친 스님들이 모여 앉아 하는 말이 "약사부처님 때문에 우리가 고생이다."라며 입을 모아 무엄한 말이긴 하지만 피곤한 끝에 원망스러운 투정 아닌 투정을 하게 되었다.
다음날 일이 일어난 것이다.
법당에 가보니 약사부처님이 안계신 것이었다.
모든 스님들이 밖으로 나와 사방을 찾아 보아도 약사부처님을 찾지 못하였다.
결국, 한식경의 시간이 지난후에야 동구밖 개천가에 앉아계신 부처님을 발견하게 되었다.
대중이 반가와 하고 참회 하면서 옮겨 모시기로 했지만 부처님이 꼼짝 달싹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석불이라고는 하지만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의 짓이 아님을 알고 대중들이 참회하면서 부처님께 여쭙기를 "이곳이 마땅하지 않으면 어느절로 가시겠습니까?"
"홍천사 입니까?"
"정토사 입니까?"
"명도절(개운사)입니까?"라며 서울 주변의 절 이름을 모두 들먹이면서 좌대를 움직이려 하였으나 꼼짝하지 아니하는 것이었다.
대중들이 또다시 절 이름을 대다가 "흥국사로 가시렵니까?"
하였을때 드디어 부처님의 좌대가 쉽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결국 봉국사의 스님들 중 스님도인이 부처님을 모시고 단숨에 흥국사까지 모실수가 있었다 하며,
법당의 자리도 확정하지 못하고 모셔다가 내키는 대로 놓았던 자리에서 또 다시 자리를 옮기려하니 부처님이 요지부동 꿈쩍도 하지 않으셨단다.
할수 없이 그곳이 부처님이 좌정할 곳임을 알게되어 그 자리에 오늘의 흥국사 약사여래 부처님을 모시는 법당이 된 것이라 한다.
이곳을 찾는 많은 신도들이 대웅전 부처님에게 기도하고는 틀림없이 약사여래 부처님에게 기도하고 공양을 올린다.
그만큼 이곳 흥국사에 있는 약사여래 부처님의 영험한 내력이 일화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약사부처님에 대한 약사 신앙은 중생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이라 한다
출처 - 흥국사 홈페이지
약서여래 부처에 얽힌 일화 재밌죠.
여러분들도 기도 해보세요.
대웅보전 추녀마루에는 일반적인 사찰에서 보기 힘든 궁전이나 성곽의 문 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상이 배열되어 있습니다.
대당사부 - 손행자 - 저팔계 - 사화상 순으로 배치되어 있네요.
현재의 선조의 평판은 안좋지만 그래도 아버지 덕흥대원군의 효심은 우리가 보고 배워야 겠죠.
흥미로운 약사여래 부처에 얽힌 일화와 일반적인 사찰에서 보기 힘든 잡상과 화려한 기와들을 만날수 있는 곳 흥국사
식사하시도 하고
역사 공부도 하고 재미있는 일화도 함께 알고 간다면 더욱 좋겠죠.
시간 나실때 꼭~ 둘러 보세요.
흥국사 탱화는 제자리로..
글 도움
무형유신지식백과 - http://www.ichpedia.org/
한국 관광공사 - http://korean.visitkorea.or.kr/
흥국사 홈페이지 - http://joongchen.buddhism.org/
nambaone.com 남바원 남바원닷컴 nambaone nambaONE 남바원여행기 nambaonelee
- 오규정소는 나라에서 임명한 관리들이 머물면서 왕실의 안녕을 비는 동시에 관할 사찰들을 관리하던 곳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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