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곽 사적 제10호 - 광희문
조선시대 서울 도성(都城)의 4대문 사이에 나 있던 사소문 가운데 하나이다.
수구문(水口門)이라고도 하였는데, 청계천의 수구에 가깝고 남산 북동쪽 일대의 물이 이 문 부근을 통해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또, 이 문으로 시체가 많이 나갔다고 하여 시구문(屍口門)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광희문 밖 일대는 공동묘지가 자리 잡고 무당이 많이 살아 ‘신당(神堂)’이라 불렸다.
이를 갑오개혁 때 발음이 같은 ‘신당(新當)’이라 고쳤는데, 이곳이 지금의 중구 신당동이다.
광희문의 역사적 사실을 보면 인조 2년(1624)에 이괄이 난을 일으켰다가 수구문을 통하여 도망갔고,
병자호란(1636)때에는 임금이 역시 이문을 통과하여 남한산성으로 옮겼다고 한다.
1915년에 문루가 자연붕괴되어 홍예문과 석축만 남아있었고
1966년에는 문 북쪽의 성곽 일부를 철거하고 도로로 확장했다.
그후 1975년 옛 모습으로 복원하면서 도로확장에 따라 원위치에서 15m 남쪽으로 옮겨졌다.
문의 남쪽으로 온전한 모습을 잃은 옛 성벽이 이어져 있다.
석축체성의 높이는 6m, 폭은 7,98m이며, 바깥쪽 홍예의 높이는 4,18m, 폭은 4,58m이며, 내측 홍예의 높이는 4,68m, 폭은 5,18m이다.
홍예 내부 통로의 폭은 5,16m이고, 홍예 대석의 높이는 2m이다.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초익공계 단층 우진각지붕으로 되어 있다.
사각 초석 위에 기둥을 세우고, 내림마루에는 양성마루를 하고 잡상을 설치하였으며, 바닥은 중앙칸만 장마루를 설치하였다.
문루 바깥 사방에는 총안이 없는 전돌 여장을 둘렀으며, 좌우 안쪽에 등성계단과 협문을 마련하였다.
여장의 높이는 1.02m, 폭은 62k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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