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구문

    조선시대 서울 도성 동남쪽 사소문 광희문

    조선시대 서울 도성 동남쪽 사소문 광희문

    서울성곽 사적 제10호 - 광희문 조선시대 서울 도성(都城)의 4대문 사이에 나 있던 사소문 가운데 하나이다. 수구문(水口門)이라고도 하였는데, 청계천의 수구에 가깝고 남산 북동쪽 일대의 물이 이 문 부근을 통해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또, 이 문으로 시체가 많이 나갔다고 하여 시구문(屍口門)으로 불리기도 했다.이 때문인지 광희문 밖 일대는 공동묘지가 자리 잡고 무당이 많이 살아 ‘신당(神堂)’이라 불렸다. 이를 갑오개혁 때 발음이 같은 ‘신당(新當)’이라 고쳤는데, 이곳이 지금의 중구 신당동이다. 광희문의 역사적 사실을 보면 인조 2년(1624)에 이괄이 난을 일으켰다가 수구문을 통하여 도망갔고, 병자호란(1636)때에는 임금이 역시 이문을 통과하여 남한산성으로 옮겼다고 한다. 1915년에 문루가 자연붕..

    민족의 민족의 수난과 굴곡을 간직한 곳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그리고 자주독립의 의지 독립문

    민족의 민족의 수난과 굴곡을 간직한 곳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그리고 자주독립의 의지 독립문

    2011/10 제작 자주독립의 의지 독립문(獨立門) 그리고 민족의 민족의 수난과 굴곡을 간직한 곳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날씨가 흐린 어느날 지인분께서 란돌이 말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아무곳이나 가자고 하네요. 그래.. 그럼 역사공부도 할겸 이곳으로 가자. BUS 타고 독립문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향했습니다. 버스안에서 창밖을 보니 독립문이 먼저 우리 일행을 맞이해 주네요. 하차후 이동하였습니다. ▒ ▒ ▒ ▒ ▒ ▒ ▒ ▒ 독립문 (獨立門, Seoul's Independence Gate) 사적 제32호 갑오개혁 [甲午改革] 이후 자주독립의 의지를 다짐하기 위해 세운 독립문 과거 영은문 자리에 전국민을 상대로 모금운동을 하여 세웠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에투알개선문을 서재필(徐載弼)이 스케치한 것을 근거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