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문

    조선시대 서울 도성 동남쪽 사소문 광희문

    조선시대 서울 도성 동남쪽 사소문 광희문

    서울성곽 사적 제10호 - 광희문 조선시대 서울 도성(都城)의 4대문 사이에 나 있던 사소문 가운데 하나이다. 수구문(水口門)이라고도 하였는데, 청계천의 수구에 가깝고 남산 북동쪽 일대의 물이 이 문 부근을 통해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또, 이 문으로 시체가 많이 나갔다고 하여 시구문(屍口門)으로 불리기도 했다.이 때문인지 광희문 밖 일대는 공동묘지가 자리 잡고 무당이 많이 살아 ‘신당(神堂)’이라 불렸다. 이를 갑오개혁 때 발음이 같은 ‘신당(新當)’이라 고쳤는데, 이곳이 지금의 중구 신당동이다. 광희문의 역사적 사실을 보면 인조 2년(1624)에 이괄이 난을 일으켰다가 수구문을 통하여 도망갔고, 병자호란(1636)때에는 임금이 역시 이문을 통과하여 남한산성으로 옮겼다고 한다. 1915년에 문루가 자연붕..